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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종사 시탕기념 사진첩으로 본 요양 일기, 사진 입수 과정
산동교당에 근무한 안성원 교무가 손수 백우암을 중수하자 범산 이공전 종사가 방문하였다. 깔끔하게 정비된 백우암을 둘러본 범산님이 흐뭇하고 대견스러워 과거 정산 종사님을 시봉한 추억과 <대종경> 편수도량에 관하여 회고담을 풀어놓았다. 그 후 안성원 교무에게 “이 사진을 자네가 보관하소”라며 <정산종사 시탕기념 산동요제>와 <금암춘추> 사진첩을 건네주어 보관하게 되었다. 안성원 교무가 떠나고 사진첩은 한동안 산동교당에 묻혀 있었다. 그후 홍현두 교무가 부임하여 ‘이 귀중한 자료를 이렇게 보관만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원기 103년 봄 원불교출판사에 사진첩을 의뢰하였다.
두 권의 사진첩은 원기 38년경에 범산 종사가 크라프트지에 사진을 붙여 설명을 적어 놓았다. 이중 일부 사진은 정산종사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에서 원기 86년(2001) 12월 31일에 발행한 <개벽계성 정산종사>에 실렸다. 그러나 원기 86년 정산 종사 화보집 편성 때 일부 사진만 공개되고 사집첩 원본은 공개되지 않았다. 화보 편찬에 참여한 남산 박정기 원로교무가 사실 확일을 할 수 없어 화보집에 일부 오류가 있었음을 오늘날 발견하였다. 더욱이 미공개 사진은 정산 종사의 남원 산동교당과 금암교당의 요양기록을 상세하게 엿볼 수 있는 자료로 교단사적 가치가 상당하다.
원불교출판사는 65년이 지난 오래된 사진 원본을 현대 기술 방식을 동원하여 스캔하고 후면에 영인본으로 실어 사실감을 주었다. 크기가 대부분 5X5cm인 사진은 고화질로 스캔하고 포토샵으로 작업하여 사진 크기를 키우고 전면에 원본 순서대로 배열하였다. 그리고 사진 설명은 본래 적힌대로 밝히고 사진 원본은 기록관리실에서 영구 보관하도록 합의하였다. 이 가운데 3장의 사진을 50x50cm의 크기로 10배 확대하여 액자로 만들어 백우암에 걸어 두고 정산 종사의 요양지와 <대종경> 편수도량임을 전하고 있다. (본책, 7쪽)
범산 이공전 종사가 정산종사를 시탕(侍湯)했던 1년간의 요양일기가 <정산종사 시탕기념 화보집>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됐다. 화보집은 제1집 산동요제(山東療霽)와 제2집 금암춘추(錦巖春秋)로 구성돼 있으며, 이공전 종사의 육필 메모가 병기된 사진첩 영인본도 수록돼 있다.
화보집의 근간이 된 두 권의 사진첩 <정산종사 시탕기념 산동요제>와 <금암춘추>는 원기38년경에 범산 종사가 크라프트지에 사진과 함께 설명을 적어놓은 것으로, 원기86년 정산종사 화보집 편성 때 일부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 화보집에서는 그때 공개되지 않았던 정산종사의 ‘남원 산동교당과 금암교당의 요양기록’을 상세히 엿볼 수 있다.
제1집 ‘산동요제’에는 원기38년 6월12일에 정산종사가 두 달 만에 병석에서 일어나자마자 소태산 대종사성탑에 참배한 사진부터 7월6일 이리역을 출발해 기차 내에서 이동경관의 호위를 받으며 전주역에 도착하는 모습, 이어 남원으로 이동해 산동 백우암으로 향하는 과정 등 총 50장의 사진이 실렸다.
제2집 ‘금암춘추’에는 정산종사가 원기38년 8월3일 의사의 권유로 금암 교당으로 행가해 4개월간 머문 기록이 담겼다. 새벽5시부터 밤9시까지 세세히 기록해놓은 시탕일과표와 함께 건강기도, 공양 준비, 주사를 놓는 모습 등의 생생한 시탕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정산종사가 의자에 앉아 아침을 기다리는 모습, 세수와 양치질을 하는 모습 등의 소소한 일상을 비롯해 제54회 탄신 축하 소연(小宴)을 기념한 단체 사진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제2집에는 총 48장의 사진이 실렸다. (출처: 한울안신문 – [바로가기])
원기38년 정산종사의 정양은 이리 고등선원에서 산동 백우암, 남원 금암봉 교당을 거쳐 장수교당으로 이어진다. 남원 산동교당에 근무했던 안성원 교무가 손수 정산종사가 정양했던 백우암을 중수(重修)하자 범산 이공전 종사가 방문했다. 깔끔하게 정비한 백우암을 둘러보고 흐뭇하고 대견스러워하며, 과거 정산종사를 시봉한 추억과 <대종경> 편수도량에 관한 회고담을 설한 후 돌아갔다. 그 후 안성원 교무에게 정산종사 시탕기념 <산동요제>와 <금암춘추> 사진첩을 건네면서 “이 사진을 자네가 보관하소“라고 하여 보관하게 됐다. 안성원 교무가 떠나고 잊혔던 사진첩을 홍현두 교무가 부임해 ‘이 귀중한 자료를 이렇게 보관할 수 없다‘고 판단해 원기103년 봄 원불교출판사에 의뢰해 화보집이 만들어지게 됐다.
사진첩 제1집 산동요제에는 원기38년 6월12일 정산종사가 두 달 만에 병석에서 일어나 대종사 성탑에 참배한 사진부터 7월6일 이리역을 출발하여 전주역에 하차, 지프를 타고 오수를 경유하여 남원역에 도착, 산동 백우암으로 행가한 사진들이 담겨있다. 제2집 금암춘추에는 원기38년 8월3일 의사의 권유로 금암봉 교당으로 행가해 머무신 4개월의 기록이 담겼다.
새벽 5시부터 저녁 9시까지의 시탕일과가 세세하게 기록돼 있으며, 공양준비, 다식, 물품구매, 주사 등 시탕의 생생한 모습이 사진으로 전해진다. 또 음력 8월4일 54회 탄신 축하 소연으로 봉축성수무강을 기원하며 참여한 대중과 촬영한 기념사진에는 병색을 찾아볼 수 없는 환한 미소의 정산종사를 만날 수 있다. (출처: 원불교신문 – [바로가기])
* 정산 종사에 대한 이해 – [바로가기]
* 범산 이공전 종사(엮은이)에 대해 – [바로가기]
CONTENTS 
축시 · 仰慕 鼎山宗師 / 궁산 오광익 – 4
정산종사 시탕기념 사진첩 발굴자료 / 주성균 – 5
시탕기념 사진첩 제1집 산동요제 – 13
시탕기념 사진첩 제2집 금암춘추 – 65
산동요제 영인본 – 113
금암춘추 영인본 – 135
시탕(侍湯) 1년의 기록 / 범산 이공전 – 151